세상사는 이야기

류시화/길 위에서의 생각

부깨 2017. 12. 4. 04:57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 위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류시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