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부깨 2018. 6. 14. 05:08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 위에 쓰러진다

 

- 류시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