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부깨 2019. 6. 7. 06:45

 

 

목숨

 

                                    신동집  

 

 

목숨은 때 묻었나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 광년의 현암(玄暗)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砲煙)의 추억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에 젖어든 이름들

 

살은 자는 죽은 자를 증언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하라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 많은 시공(時空)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는 살아서 돌아오라.

 

< 서정의 유형, 영웅출판사,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