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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겸손으로 익어가는 사람들과 천천히 오랫동안 갈색 향기로 물들고 싶다
부깨
2021. 10. 2. 06:01
시월의 기도 /권경희
작고 연약한 나무가
싹이 움터, 잎이 무성해지고
저 고운 빛으로 물들기까지
무수한 아픔일 테지
옹색한 곳 어디에서 뿌리를 내려도
성스러운 빛을 거두는 들녘은
한 해의 수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수고와 은혜로 겸허해지는 계절
내려놓지 못하는 설익은 것들로
중년의 가을은 첫서리처럼 시리지만
비움을 알고 붉게 물드는 홍엽처럼
갈바람에 한 잎이 놓아줄 수 있는 나무였으면 해
유장하게 흐르는 물길처럼
한 사람이 가을 들녘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눈물을 참고 견디며
깊고 넓은 강을 건너는 일인지
강 언덕에서 끄덕이는 줄 아는 들국화였으면 해
늦가을 노란 산국화 향기가
금빛 들녘으로 은은히 스며들듯이
감사와 겸손으로 익어가는 사람들과
천천히 오랫동안 갈색 향기로 물들고 싶다
<카페 '서비의 놀이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