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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유채꽃밭 속에서 잠이 들다가 며칠은 살구꽃 벼락을 다 덮어쓰도록 차를 움직이지 못 할 거야

부깨 2022. 4. 17. 08:42

꽃을 따라 가는 길 / 김별

 

봄은 어디까지 갔을까

 

조금 늦기는 했지만

중고차 시장에 가서

속 썩이는 고물차 던져 주고

1톤 트럭 한 대 구입할 거야

벌통 몇 개 싣고

봄이 출발한 남쪽에서부터

 

유채꽃 벚꽃 살구꽃 배꽃 복사꽃 사과꽃 영산홍

아카시아꽃 밤꽃 칡꽃 싸리꽃...

 

온갖 꽃을 따라 

북상 길을 떠날 거야

꿀을 받으면

입맛이 쓴 사람에게

입술이 다 타버린 사람에게

물 한 모금 못 넘기고 앓고 있는 사람에게

달콤한 맛을

한 병씩 보낼 거야

약으로 보낼 거야

 

바닷가 유채꽃밭 속에서 잠이 들다가

며칠은 살구꽃 벼락을 다 덮어쓰도록 

차를 움직이지 못 할 거야

아카시아꽃 그늘에서는 편지를 쓰리

그리운 사람에게

잊고 산 사람에게

아득히 먼 사람에게

꽃을 따라 왔다고

꽃을 따라 간다고

지상의 꽃들이 다 떨어지는 날 돌아온다고

 

싸리꽃 능선에서 눈물나리라 

혼자라는 것이

내 얼굴을 잊을 만큼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이

닦아도 닦아도 눈물나리라

 

눈물 닦고

밤꽃 그늘 아래서는 알몸의 불덩이를 생각할거야

목숨을 걸었던 시절 

폭풍 같던 사람을 생각할 거야

 

지나가는 사람도 없이 

외진 벌판

텁수룩해진 수염과 머리칼로

이름도 모를 꽃향기에 취해 졸다가

한 마디도 안하고

잉잉거리는 벌들의 노래를 들을 거야 

깊은 밤

빗소리에 깨어나 잠들지 못하리

바람 불면 

별이 총총하면

풀벌레의 맑은 소리가 저녁을 시작하면

달맞이꽃처럼 잠들지 못하리

 

서리 맞아 국화의

향과 빛깔이 더 진해지고

벌들은 그만 꿀을 따지 않으리

철새들은

눈이 시린 하늘을 텅 비워 놓으리

비워 놓아 

보름달처럼 차오르는 잊었던 얼굴을 

다시 미치도록 그리워하리

 

그렇게

가을이 다 타버려

첫눈이 내리는 날

더 늦기 전에 돌아오리

단꿈을 가져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