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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을 복사하다 / 이화은

부깨 2023. 6. 27. 15:57
 

 

 

 

절정을 복사하다  / 이화은

 

예술의 전당에서 이만원 주고

클림트의 키스 복사본을 사왔다

 

트윈 침대만 한 북쪽 한 벽에

햇솜 같은 할로겐 불빛을 짙게 깔고

그들을 눕혔다

 

이건 아니다

너무 진부했다

 

매양 여자가 아래로 깔리는 체위

뒤집어 여자를 위로 올렸다

 

마침 티브이에서 못 생긴 여자가

여성 상위에 대해 침을 튀기고 있다

 

못생길수록 위로 올라가고 싶어한다

이 시간부터 그렇게들 생각한다면

고즈넉이 남자의 입술을 먹고 있는

이 여자는 너무 아름답다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불빛이 주르르 발 아래로 흘러내린다

 

나는 체위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 입맞춤이 끝나고 그들은 눕던가

헤어져 돌아가던가 할 것이다

 

한국 영화처럼

끝까지 다 말해 버리지 말자 하지만

 

이 숨막히는 정적

한순간만은 다시 복사해

 

내 가장 숨막히는 시간 속에

걸어두고 싶다

- 이화은, 『절정을 복사하다』(문학수첩,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