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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잃고 다른 사람들 위해 뛰는 대한민국 영웅들 인터뷰 내용 가족들의 사망과 질병으로 고통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인터뷰이들의 내용을 별도로 발췌해 묶은 것입니다.
부깨
2024. 11. 18. 06:44

PICK 안내
[삶-특집] "정규직-비정규직 다니는 길 가로등 밝기 마저 차이 있었다"(종합)
"커피에 발암물질 있는데…커피 사업자들 무신경하다"
"교사들의 희생에 국회·공무원·아보전의 책임 크다"
가족 잃고 다른 사람들 위해 뛰는 대한민국 영웅들 인터뷰 내용
편집자 주= 이번 특집 기사는 2022년 9월 [삶] 인터뷰를 시작한 이후
가족들의 사망과 질병으로 고통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인터뷰이들의 내용을
별도로 발췌해 묶은 것입니다.

"우리 아들, 얼마나 추울까"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어머니 김미숙 씨가
아들의 동상에 목도리를 둘러 주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그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다.
어린 자녀가 심각한 질병에 걸려도 부모의 마음은 무너진다.
연합뉴스가 2022년 9월부터 진행한 [삶] 인터뷰에는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받아낸 사람들이다.
슬픔과 절망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그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하루를 살아간다.
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비정규직이 겪는 부당함을 걷어내기 위해,
교사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그들은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고 돈과 권력, 자리를 탐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기의 경험을 전하고, 조용히 지원하고, 가만히 안아준다.
그들이 한국의 진정한 영웅이다.
그들은 ▲ 아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사망한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 대학생 딸이 유방암으로 숨진 후에 다른 사람의 건강을 위해
무료로 강의하는 이계호 교수
▲ 교사인 아내가 학부모 괴롭힘으로 숨진 이후
학교 현장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고(故) 심미영(가명) 선생님의 남편
▲ 어린 아들의 1형 당뇨 진단 후 같은 질병을 가진
환우와 그 가족들을 돕는 김미영 1형 당뇨 환우회 대표 등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촬영 이건희]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아들(김용균)이 다녔던 회사의 경우 정규직이 다니는 길은 환했는데,
비정규직이 다니는 길은 가로등이 희미했습니다.
정규직 식당은 따로 있었고, 식사 내용물도 달랐습니다.
심지어 캐비닛 크기도 차이가 있었죠.
사고로 사람이 죽으면 하청회사들에 페널티를 부과하는데,
정규직이 죽으면 4점, 비정규직이 죽으면 2점입니다.
정규직 1명의 목숨값은 비정규직의 두배라는 의미죠.
산재사고가 없으면 나라에서 세금혜택을 주는데,
서부발전은 5년간 20억원을 받았습니다.
위험한 일을 하청회사에 떠넘겨 노동자가 많이 죽어도,
원청에는 아무도 안 죽은 것처럼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받은 20억원은 원청 직원들이 성과금으로 나눠 갖습니다."
비정규직 김용균은 2018년 12월 11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됐다.
충남 당진에 있는 서부발전의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서다.
홀로 심야 작업을 하다 참변을 당한 것이다.
24세였던 그 청년은 발견 당시 머리와 몸이 분리돼 있었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머니 김미숙은 하나뿐인 자식이 죽었다는 현실에
남편과 함께 영안실 복도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그 어머니가 절망을 딛고 일어나 김용균재단을 만들었고,
그 이사장으로서 적극 활동하고 있다.
다른 청년들이 자신의 아들과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근로 현장에도 달려가고, 국회에 가서도 목소리를 높인다.
김용균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 6년이 됐지만 1천만명의 비정규직이
겪는 부당함은 여전하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진단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급여는 절반밖에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산업현장에서 숨지는 사람은 대부분이 비정규직들이다.
김 이사장은 특히 정치권의 무신경함에 분노했다.
"그들은 자기 당을 우선시합니다.
자기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돼야 하고, 자기 당이 살아야 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면서
국민들 이익보다는 자기들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4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이계호 교수
[촬영 이다빈]
이계호 교수(태초먹거리학교 교장)"내가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딸 때문이었습니다.
딸은 대학생이었던 22세에 유방암에 걸렸고
3년 후에 재발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왜 암에 걸리는지, 암을 예방할 방법은 없는지,
재발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딸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아이였다.
이 교수는 딸에 대해 가능하면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본인의 성장기 삶도 힘들었다.
아버지가 미곡상을 하시다 도산하는 바람에 고교를 중퇴해야 했다.
친구들이 대학에 다닐 때도 세차장에서 시커먼 얼굴을 하고 일을 했다.
뒤늦게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 그는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그의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돈에 한이 맺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1만원짜리 지폐를 냄비에 가득 넣어 끓이고는
그 국물의 맛이 어떤지 먹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을 돕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꿨다.
그는 딸아이가 하늘나라로 가면서
삶과 죽음, 행복, 건강 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고민 끝에 충북 옥천에 태초먹거리학교를 세웠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건강한 먹거리와 식생활 습관,
마음의 자세 등에 대해 무료로 강의한다.
이 교수는 상당수의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단번에 병을 고치는 방법을 찾는데, 그건 바른길이 아니라고 했다.

충북 옥천에 있는 태초먹거리학교 가을철 모습
[이계호 교수 제공]
"암의 후성 인자는 먹거리, 생활 습관, 환경입니다.
암을 극복하려면 이들 3가지를 바꿔야 합니다.
이런 발병 원인이 5년, 10년, 20년 동안 반복돼서 문제가 됐는데,
이걸 고치지는 않고 병원에서 표준치료를 마친 뒤
특효약과 비법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언젠가는 전이가 되거나 재발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특히 먹거리에 대한 우려가 크다.
"나는 대한민국에 있는 거의 모든 먹거리를 분석해봤습니다.
내가 세운 벤처기업 한국분석기술연구소에는
식약처 등이 먹거리 분석을 의뢰해오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람의 먹거리,
대형마트에서 팔리고 있는 1차 농축수산물과 2차 가공식품을
많이 분석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먹거리 문제가 무엇인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붉은 명란젓,
뷔페식당에서 색깔이 선명한 채소와 과일류 등은 건강에 이롭지 않다고 했다.
보기 좋은 색깔을 내기 위해 산화방지제인
아황산나트륨을 뿌려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술과 담배뿐 아니라 커피도 발암물질에 해당한다고 했다.
하루에 1∼2잔은 괜찮지만, 그 이상 마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커피 업자들은 로스팅 과정에서 생성되는
발암물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팔리는 많은 상업용 커피를 3년간 분석했습니다.
캔 커피, 커피믹스뿐 아니라 지역의 유명 브랜드 커피까지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먹거리에 유난히 민감한 한국 사람들이
커피의 발암 물질에 둔감한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커피 로스팅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아크릴 아마이드, 벤조피렌이 생기는데,
한국의 대부분 커피 업자는 발암물질이 어느 정도 들어있는지
체크하지도 않습니다"

심미영 대전용산초 선생님 1주기 추모식
2024년 9월 6일 대전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열린심미영 선생님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대전용산초 심미영 선생님 남편
"우리 집 둘째 아이는 만 8세의 딸인데,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왜 안 오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그곳에 너무 오래 있는 것 같다면서 이제는 빨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하니 그렇게 알고는 있는데,
먼 여행을 간 것으로 이해합니다.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이는 만 13세의 딸인데,
애써 외면하고 슬픔을 표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더 아픕니다.
아내가 하늘나라로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장대 위의 목걸이, 빗, 화장품이 그대로 있습니다.
아내가 다시 돌아올 것 같은 느낌 때문입니다"
대전용산초 심미영(가명.40대 중반) 선생님은 지난해 9월 하늘나라로 떠났다.
2019년부터 3년간 지속된 학부모의 괴롭힘은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작년 7월 서이초 선생님의 순직을 계기로 과거의 트라우마가 솟아올랐다.
이를 견디지 못한 그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 딸,
남편을 두고 40여년간의 삶을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