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 김정한
누구나 ‘나이 든다는 것’을 한 번쯤 고민한다.
거울과 멀리하게 되고 ‘나이 듦’ 그 자체를 고민하게 된다.
또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늙어가는 나와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나이 든다고 해서 모두가 정서적으로 성숙해지고
진정한 내면의 아름다움이 완성된,
모두가 인정하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나이 드는 과정에서
치열한 고민과 정서적 반감을 수시로 경험한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아, 나도 이제 나이에 무릎 꿇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뇌를 스친다.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게 되면 그냥 주저앉는 일도 생긴다.
‘늙는 것’은 단지 나이에 따라 진행되는 생물학적 자연현상이 아니다.
좋은 이유도 있다.
나이와 함께 다소 행동이 느려지면서
다른 것들을 소화하는 능력이 확장되고, 마음에는 여백이 생긴다.
경험이 풍부했던 만큼 좀 더 지혜로워진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더 걸릴 뿐이다.
20, 30대에 일주일이 걸리던 일이 40대가 훌쩍 지나면
2-3주의 시간이 소용된다.
모든 것이 느리게 작동되며 때로는 실수를 자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진'을 한다거나, '일시정지'를 해서는 안 된다.
당장 힘들어도 ‘나다움’을 유지하며 품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젊어서는 스마트한 게 중요했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모든 것이 물결처럼 평화롭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절망의 사유가 아니라 소망의 토대이고,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억지로 버티려 하거나 애써 밀어내지 말고
두 팔 벌려 반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제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닐 만큼 성공한 사람이라도
여러 번의 실패를 맛보았을 것이고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주기적으로 슬럼프가 찾아왔을 것이고
사표를 써서 가지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 상태가 오면 분명히 내면은 늘 전쟁터가 되어 늘 자신과 싸우게 된다.
다만 그 고비를 이겨내어 스스로를 단단하게 지켜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있고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해
쉽게 휘둘려 벼랑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무엇을 하든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자신에게도 정확하게 적용시키는 사람이어야 성장도 가능하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하기보다 빼기를 잘해야 한다.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 작은 하나라도 '빼기'를 꾸준히 하자.
음식의 양, 음식의 개수, 소유하는 것을 조금씩 줄여나가자.
해야 할 일도 우선순위를 정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은 횟수를 줄이자.
모든 것을 최소화하는 습관을 갖자.
그것만으로도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지고 건강해진다.
해야 할 것들이 의무감으로 다가올 때,
하지 못해 안달이 날 때 삶은 무거워지고 강박증의 굴레 속으로 빠지게 된다.
무엇이든 덜어내고, 나누고, 단순화시켜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야 건강도 지키며 하고 싶은 일도 즐기며 살 수 있다.
무엇이든 우선순위를 나에게 두자.
입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 먹는 것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스스로에게 대접하자.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배우고 싶었던 강의를 등록하고
좋아하는 곳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나를 위한 선물' 이 된다.
일 년에 몇 번 만이라도 나를 위한 날을 만들자.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에게 선물하게 되면 색다르고 설렘을 맛보게 된다.
만족의 상태가 최고조가 되면 눈가의 햇살처럼 번져가는 주름도,
새까맣던 머리가 점점 하얗게 변해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애써 감추려 하지 않고 늙어가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며 사랑하게 된다.
고창의 단풍나무숲에 가면 400년 된 단풍나무가 붉은 잎으로 하늘을 덮고 있다.
너무나 키가 크고 웅장하여 고개를 높이 들어 하늘을 보아야
붉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단풍나무를 볼 수 있다.
고창을 갈 때마다 생각지 못한 풍경이 나를 설레게 하였다.
밤새 은밀하게 내린 비로 인해 은행잎이 여러 군데 떨어져 있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겹겹이 쌓여 붉은 카펫을 밟는 것처럼 푹신하기 까지 했다.
가을 단풍잎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나도 모르게 ‘예쁘다, 예쁘다’를 연발했다.
이렇게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심장을 두드리며 설렘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으니까.
400년 된 단풍나무인데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단풍나무처럼 사람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늙어갈 수는 없을까?
욕심을 내려놓으면 좋을 텐데. 그게 쉽지가 않다.
가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당당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늙어감에는 젊은이들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세상을 편안히 관조할 수 있고 경험으로 다져진 지혜와 넉넉함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기에 여유가 있고 아름답다.
어떤 경우도 젊었을 때보다 감사하는 마음, 동정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억지나 가식을 멀리하게 되어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게 된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사람 중에 광고 모델도 많다.
아파트, 화장품을 비롯한 각종 생활용품에서 두루두루 다양하게 찾아볼 수가 있다.
마흔의 여자가 성형을 해서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인다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세월의 무게를 당당히 보여주는 것이 더 친숙하고 편안하다.
원하는 곳을 예쁘게 성형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예쁘게 성형할 수는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무의 편안한 나이테처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고운 결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비록 낡았지만 볼수록 마음이 가는 골동품처럼 인생을 갈무리할 즈음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멋지고 품위 있게 늙어간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날은 없을 것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지게 나이가 들어야 당당하고 아름다울 수가 있다.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노을 진 석양이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어도
인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지만
억지로라도 어찌해서라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
마지막 노래, 마지막 인사가 담담히 느껴지는 날
나는 좋을 것이다.
아름답게 나이가 드는, 그래서 초연 해지는 날이.
눈물 나도록 좋을 것이다.
누군가 잘 지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씩, 천천히, 더디 가고 있노라고
대답하고 싶다.
* 이 글은 김정한 에세이
[ 고마운 당신을 만났습니다 ]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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