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농부의 가르침
햇살을 풀어놓은 들녘엔
여름이라고 소풍 나온 매미와
멀리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
그리고 입술을 굳게 다문 하늘뿐입니다.
한가로움이 턱 하니 자리 잡은 논길을 따라
소달구지에 거름 할 똥을 싣고서
밭으로 가는 늙은 농부의 움푹 팬 광대뼈에
머문 여름 햇살이 더 짙어 보이기만 하던 그 때.
“워어” 하는 늙은 농부의 소리에
멈춰선 소달구지.
“스님 .. 어디까지 가시는 진 모르겠지만
그러다 엉덩이에 해 받치겠소.
이 소달구지에라도 타시구려.”
늙은 농부의 걱정스러운 말에
시름에 잠겨있던 젊은 스님은 할 수 없다는 듯
코를 막고 옆 귀퉁이에 멀찍이 앉아 있는 걸 보고선
“하하 스님.. 똥은 더럽지요.
하지만 똥파리에겐 진수성찬이올시다.
그리고 이 늙은 농부에겐 좋은 거름이고요.“
“ 그건 그렇지만“
“스님한텐 똥은 더러운 거지만
똥파리와 제겐 소중한 것이니
똥은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구분한 거일뿐인 거고요...“
“아, 네... 그렇긴 하죠 “
띄엄 거리며 여름을 가로지르는 달구지 위에서도
고개만 숙인 채 앉아있는 젊은 스님에게
“허허 젊은 스님....
아까부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왜 그리 낙담한 표정을 짓고 있소?“
라는 늙은 농부의 말에
"큰스님 심부름으로 다른 절에 다녀오다
그만 도반 스님께서 전해주라는
귀한 서책을 잃어버렸지 뭡니까.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그래서 그리 낙담하고 계셨구먼요.
촌로라 뭐 아는 게 없지만 한마디만 하리다."
"아... 네...."
"이 늙은이가 볼 때
스님은 잃어버린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건
저 풀 뜯는 염소만 하다면,
안 일어난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여기 황소만 하구료..“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어르신“
“경전을 잃어버린 건 일어난 일이지만
큰스님한테 혼이 날지 절에서 쫓겨날지는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잖소.“
“네. 그렇지요”
“일어난 일만 걱정하시구려.
안 일어난 일은 그 다음 생각하시구..“
얼마 지나지 않아 달구지에서 내린 젊은 스님은
빨간 노을을 등지며 멀어져 가는
늙은 농부를 보며 큰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