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도…느긋한 머무름·자유로움과 사유의 공간을 허하라[인스피아]
제3의 장소 :
The Third Place

최고급 크루즈 The World호 선실 내부. 이곳의 130여개 객실은 모두 개별분양되어 공동주택처럼 운영된다. 그야말로 떠다니는 고급 레지던스라고 할 수 있다. The World 홈페이지
가정이나 일터가 아닌, 속내 털어놓고 위안받을 수 있는 ‘해방 공간’이 필요
현대 도시엔 돈 내고 먹고 마실 곳은 있어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은 드물어
‘공간’의 가치는 그곳에 생명력·다양성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소통’이 좌우
“우리 세대는 ‘제3의 장소’가 없어서 정말 우울해요.”
과거 틱톡에서 ‘제3의 장소’를 간절하게 원하는
한 미국 20대 청년의 영상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3의 장소(The Third Place)란,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제시한 개념인데요.
제1의 장소(가정), 제2의 장소(일터) 외에도
가볍게 동네에서 부담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뜻합니다. 오늘날 이런 장소는 거의 사라졌죠.
그런데 저는 이 틱톡 영상 그 자체보다도,
정작 이 영상에 달려 있던 다소 의외의 댓글, 반응들에 깜짝 놀랐습니다.
얼핏 “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요새 애들은 서로 대화도 하지 않아,
쯧쯧” 같은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대부분의 댓글들이
‘돈’ 이야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도 동네술집이나 독서모임 등 커뮤니티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돈이 없는걸요…”
실제로 이들의 고민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도시에서 돈 없이도, 혹은 적은 돈으로도
시간을 느긋하고 재밌게 때울 만한 곳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걷다가 잠깐 쉬려고 하더라도 벤치가 없어 카페로 들어가야 하고요.
과연 오늘날 도시에 저렴하게 멋대로 점유하고
느긋하게 ‘딴짓’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과거에 그런 공간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오늘날과 다른 점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제3의 장소’와 ‘가격’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싼 가격’ : 문턱을 낮추는, 환대의 조건
저는 평소 도서관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책 꾸러미를 안고 돌아오다가 생각했습니다.
‘만약 도서관에 목욕탕이나 놀이동산처럼 입장료가 있다면
내가 지금처럼 부담 없이 일주일에도 몇번씩 도서관에 다닐 수 있을까?’ 하고요.
실제로 레이 올든버그는,
누구나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제3의 장소’의 주된 특징을 정리했는데요.
저는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바로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
그리고 ‘자유로움’, 이 두 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ㄱ. 우선 ‘가격’의 문제인데요.
우리가 드라마나 책에서, 과거의 정감 가고 좋았던 마을 공동체, 카페, 술집 등의
이야기를 할 때 ‘전등 밑 그림자’처럼 간과하곤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과거의 ‘정감 가고 좋았던 공동체’들을 만든 핵심 전제는
그 장소의 이용료가 무료이거나 혹은 굉장히 저렴해
전혀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든 남루한 사람이든
누구든 ‘문턱’ 없이 환대를 받을 수 있었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때론 섞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제가 영국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라는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대목이기도 한데요.
하비에 따르면 19세기 중후반 ‘맨손의 빈곤한 시골 출신 노동자들’로 북적이던 파리 골목은 그야말로 노동자용 저렴한 식당·술집·카페의 시대라고도 할 만했다고 합니다.
1851년 기준 4000곳이었지만,
불과 30년 만에 4만2000곳(1885년)으로 10배가 늘었을 정도니까요.

1889년 파리의 지도. 19세기 파리는 본격적인 도시개발 및 지방에서의 대대적인 노동력 유입으로 인해 급격하게 그 모습이 바뀌어갔다. old maps of paris
비좁은 쪽방에 사는 이들에겐 공동의 주방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빈민 가구 10곳 중 6곳은 요리시설이 화덕 하나뿐이었고요.
도저히 집밥을 먹을 수가 없었죠.
저렴한 식당들은 조금 시설이 허름할지라도 명백히 저렴하고 매력적인 가격, 외상, 자유로운 출입을 장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오늘날에도 부엌이 너무 비좁거나 재료를 사고 직접 만들 여유가 없어서 집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렸는데요.
이런 장소는 주방 외에 사랑방 역할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렴한 밥을 간편하게 먹으며,
노래를 부르거나 대화를 하며 즐길 수도 있었는데요.
이곳은 자유로운 분위기로 인해, 평소 억눌려 있던 - 가정이나 일터에서도
말할 수 없는 불평불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해방의 공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꾸준히 오랜 세월 동안 적당히 싼값에 밥을 먹을 수 있는 술집, 노동자 카페, 밥집은 정부 당국 및 경영자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이며 요주의 감시 대상이었죠.
이런 곳에서 빈민들은 비좁은 단칸방에 살면서도, 밥을 먹으며 공동의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이웃사촌’들과 부담 없이 사교 활동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저렴한 노동자식당 외에도, ‘제3의 장소’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로는 영국의 ‘커피하우스’가 있었습니다.
커피하우스란 17~18세기 런던에서 번성했던 장소인데요. 이곳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누구나 다양한 소식을 얻거나 토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런던 커피하우스, 그 찬란한 세계>를 쓴 매슈 그린에 따르면 - 사실 커피하우스가 영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런던에서 커피하우스가 대중적이고 독창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렴한 입장료와 자격 조건에 제한을 두지 않은 환대의 분위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커피하우스는 계급을 나누어 입장 자격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입장료는 1페니 동전(현재 기준 약 1500원)과 ‘재미난 이야기’ 정도였죠.
매슈 그린에 따르면 일단 커피하우스에 들어서면,
손님은 “뉴스든 소문이든 뭔가 한 가지는 말해야 했다”고 합니다.
“어디서 들었던 것이든, 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것이든… 즉석에서 지어낸 것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죠.
펍, 노동자식당, 커피하우스 등 이런 제3의 장소들은,
사적인 공간에서만 살아가는 이들은 얻을 수 없는
우연한 만남, 소속감, 기분전환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싼값’은 이 모든 평등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환대의 핵심 전제라고도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 ‘규칙 위 자유로움’ : 효율적인 소비만 남은 도시에서 탈출하기
이쯤 되면 조금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현재도 그럭저럭 싼값에 밥이나 술, 커피 등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잔뜩 있는 것 같은데, 왜 오늘날엔 이런 장소에선 과거 제3의 공간 같은
커뮤니티가 발달하지 않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고객의 느긋한 머무름, 자유로운 활동’이
점차 허용되지 않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일 텐데요.
오늘날 도심에 있는 대부분의 저렴한 가게는 회전을 빠르게 하기 위해
자리 불편한 테이크아웃 등 박리다매형 모델을 띠고 있고,
충분히 장소에 머무르며 자연스러운 놀기, 딴짓, 떠들기, 눌러앉기를
막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점차 도심지의 월세가 오르면서 주인 입장에서도
‘느긋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보다는,
조용히 재빠르게 밥과 돈을 교환만 하고 사라지는 모델이 이득이었을 테니까요.
실제로 곰곰 생각해보면 그간 제가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거나 먹는 행동은
대체로 컨베이어벨트 위의 사람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는 도심의 임대료가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실제로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로 인해 동네가 번성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해 기존 가게가 속속 밀려나게 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유로움’이 있는 공간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ㄴ. 실제로 ‘자유로움’이라는 조건 역시 제3의 장소에 있어 필수적이었습니다.
커피하우스와 펍 등은 공통적으로 아직 도시의 구획화가 그렇게까지 극심하지 않았던, 혼란스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시대에 유행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상상하는 거의 모든 기상천외하고 자유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커피하우스에 음식을 가져와서 먹는 것은 물론, 커피 한잔을 두고 몇시간을 앉아 있을 수도 있었으며, 아이들은 돈을 내지 않고도 펍에 가서 일손을 좀 돕고는 소다수를 마시며 놀잇감으로 놀기도 했죠.
매일 밤 시시껄렁한 이야기부터 진지한 이야기까지 오갔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국 퍼블릭바에선) 똥을 누지 않는 한, 거의 모든 행동이 허용되었다”고도 하죠.

‘커피하우스의 군중’(1710). 영국 박물관
이런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가게 주인이 보살이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임대료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무엇보다도 이렇게 자유롭게 행동하더라도,
주로 이 가게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터줏대감들, 단골이 있고
공간의 ‘암묵적인 규약’이 자세하게 존재했기에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다툼이 일어나면 선동자는 화가 난 사람에게 커피 한잔을 사야 한다든지, 욕설을 할 경우 12펜스를 내야 한다든지 등입니다.
논쟁, 다툼이 생긴다 해도 주인이나 경찰이 개입할 것도 없이
손님들 사이에서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무슨 새로운 얘기 없소?”라는 말 한마디로
누구와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우호적 충돌”을 통해 교양, 미덕, 위트를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었죠.
또한 ‘대면’이라는 요소 - 상대방의 존재감 역시 커피하우스의 개방적이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소통의 핵심 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커피하우스에서는 “엄청나게 맛있는 퀸 파인애플”에서부터 법조문 해석까지 다양한 범위의 대화가 이루어졌는데요.
이곳에서 정중하면서도 공손한 어조로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낯선 대화 상대자가 바로 자기 앞에 있기 때문”이었죠.
반면 오늘날 비대면 상황에서는 나의 이야기를 듣는 상대에 대한 예의, 조리 있게 대화를 풀어가야 한다는 초조함, 어색함 등이 모두 벗겨져 나갑니다.
상대를 마치 감정도 주관도 없는 NPC처럼 대하게 되는 거죠.
일단 모욕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경우에는 유익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들의 손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펍과 커피하우스 등의 진솔하며 왁자한 분위기는 자주 정치적이고 (권력자 입장에서) ‘불온한’ 방향으로 뻗어가기도 했다는데요.
이는 자신을 꾸며내고 남들을 모욕하기보다는, 솔직하게 서로 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안을 얻기도 하고 재미를 얻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어쩌면 당연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입니다.
■ 빗장 커뮤니티는 생기 넘칠까?
과거 유럽 거리는 ‘유토피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점차 도심 지역의 땅값이 오르고,
기존의 사교클럽들은 ‘빗장 커뮤니티화’(엄격한 자격 조건을 두는 폐쇄적 커뮤니티)되면서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느긋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들은
빠르게 부유층, 특권층만의 공간이 됩니다.
실제로 매슈 그린에 따르면 19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들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이런 ‘빗장 커뮤니티’가 늘어나면서였다고 하죠.
이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
고급’ 아파트 안에 경로당과 주민자치시설, 식당, 영화관 등 모든 것을 마련하고 심지어 문을 걸어 잠그고 그곳을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기사에 나오곤 하죠.
이에 대해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이기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그렇게 값을 올리고, 환대의 분위기 대신
‘격조 높은 자격 조건’을 내세운 빗장 커뮤니티 안은 아주 생동감 넘치고 즐거웠을까? 하는 지점이죠.
이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하고 우화적인 실화를 짧게 소개하며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1968년 복덕방 풍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앨러스테어 보네트의 <장소의 재발견>은
‘지도에 없는 장소’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을 모은 책인데요.
이 중 ‘빗장 커뮤니티’와 관련해 제가 주목한 한 장소는 바로
‘더월드’호라는 커다란 배입니다.
더월드호는 2002년부터 바다를 떠다닌 초호화 크루즈인데요.
다른 크루즈들과 달리 독특한 점은, 이 배는 130가구를 각자 소유한 ‘물을 떠다니는 공동주택’이라는 점입니다.
한 가구당 기본으로 최소 200만달러에서 700만달러를 지불하고 막대한 관리비도 내야 하기 때문에 대단한 부자들만의 ‘섬’이라고 할 만합니다.
처음엔 티켓을 가지고 승선한 일반 승객들과 크루즈의 공간을 나누어 썼지만,
수백만달러를 투자한 부자들의 항의로 ‘자격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치우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온전히 이 떠다니는 섬을 소유하게 됐다고 하죠.
하지만 과연 이곳의 사람들은 행복하고, 언제나 장소는 느긋하고 생동감과 우아함, 열정이 넘쳤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영국의 탐사기자는 이곳에 탑승하고 나서
“이 배에는 깊은 우울이 스며들어 있다. 분위기는 마치 장례식 같다.
여기보다는 차라리 철 지난 바닷가 휴양지가 더 멋져 보일 것이다”라고 말했죠.
또한 한 연구소가 이 배의 공간 효용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구원들은 이 배가 지나치게 ‘낭비가 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나치게 크고 잘 구비된 공간에 비해 곳곳이 방치되어 있고 아무리 ‘청소’를 한다 해도 생명력 없이 죽어 있고, 호화롭지만 그저 겉껍데기에 지나지 않았죠.
장소는 그곳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 떠들썩함, 우연들이 없다면 생동감을 얻지 못합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려고 해봤자 어설프고 어색한 모방에 지나지 않죠.
공간에 다양성과 숨결을 불어넣고, 공간에 ‘기생’한다기보다는 공간을 진짜로 살게 하고 생명력, 다양성 그 자체를 불어넣어주는 ‘사람들’의 존재 말이죠.
책을 덮으며 저는 곰곰 생각합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마치 더월드호처럼 대부분의 공간이 수익을 내기 위한 배타적인 공간으로 생명력을 잃은 채 시무룩해지게 되었고 - 극소수의 공간만을 겨우 가지고 살아갈 뿐인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런 도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스럽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 맺음말
오늘 레터에서는, 조금 낯설 수 있는 ‘돈’의 차원에서 - 환대와 소통, 장소에 대해 이리저리 궁리해보았습니다.
사실 오늘 레터를 쓰는 동안, 저는 ‘어쩌면 오늘날 이런 종류의 모든 대면 활동은 어느 정도 인터넷, 유튜브로 대체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곳에는 장소와 몸이 없고, 그 안에선 진정한 ‘관계’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간접 체험은 - 비록 겉으론 ‘소통’ 같아 보이지만 - 한 사람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타인의 존재감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경험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 순간, 사람과 사람의 눈길이 맞닿는 순간은 어떻게 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람을 교육하고, 조율하고, 기죽게 하거나 기쁘게 만듭니다.
그 대화의 내용이 비록 시시껄렁할지라도, 단지 ‘대면’이라는 점 하나가 그 사람을 하루 종일 기쁘게 만들 수도 있죠.
실제로 어느 정도 과거의 ‘낡은’ 공간을 사이버공간이 대체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추세에 맞서려는 것은 마치 쏟아지는 폭포를 거꾸로 돌리려는 바보의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의미심장한 사실은, 역사상 오늘날만큼 한 사람이 이토록 좁은 공간만을 차지하고도 불평 없이 잠자코 있었던 시기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비좁은 쪽방에 살면서도 ‘공동의 응접실’을 찾아 뛰쳐나왔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작은 방 안에 스마트폰을 쥐고 기력을 소모하며 지루하고 얌전하게 잘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경험은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깨우침을 줬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것을요.
아마도 그것이, 태어나서 대체로 한 번도 제3의 장소를 체험해보지 못했던
Z세대들마저도 어떤 장소를 그리워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요.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오른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