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기 / 법정스님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 도인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 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3년전,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절의
경내지가 종단 몇몇 사무승들의 농간에 의해 팔렸을 때,
나는 분한 생각 때문에 며칠동안 잠조차 이룰 수 없었다.
전체 종단의 여론을 무시하고 몇 몇이서
은밀히 감행한 처사며 수천그루의 아람드리 소나무들이
눈 앞에서 넘어져 갈 때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가 산을 헐어 뭉갤 때 정말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다.
함께 살던 주지스님도 다른 절을 맡아서 가시고
그 그늘에 붙어살던 나는 그야말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다른 도량으로 옮겨 차라리 눈으로 보지나 말자고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 본래무일물 "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이 떠오른 순간 가슴에 맺혔던 멍울이 삽시간에 풀리었다.
그렇지!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다. 인연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 하면 흩어지고 마는 거다.
언젠가 이몸뚱이도 버리고 갈 것인데...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그 전까지의 관념이 아주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주지 노릇을 하지 않고 붙어 살 바에야 어디로 옮겨가나 마찬가지 아니냐. 중생끼리 얽혀사는 사바세계라면 거기가 거기지.
그렇다면 내 마음 먹기 탓이다.
차라리 비리의 현장에서 나를 키우리라.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
는 옛사람의 말도 있지 않더냐.
이 때부터 팔려나간 땅에 대해서도 애착이 가지 않았다.
그것은 본래 사찰 소유의 땅이 아니었을 것이다. 신도들이 희사를 했거나 아니면 그 때까지 주인이 없던 땅을 절에서 차지한 것일게다. 그러다가 그 인연이 다해 내놓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내지가 팔렸다고 해서 그 땅이 어디로 간 것이 아니고 다만 소유자가 바뀔 뿐이다.
이 날부터 마음이 평온해지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있었다. 그토록 시끄럽던 불도저며 바위를 뚫는 컴프레서 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들렸다.
그것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을 향해서는 곧잘 베풀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나 자신은 무엇을 얼마나 베풀어 왔느냐.
지금 저 소리는 너의 잠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해 터룰 닦는 소리다.
이 소리도 못 듣겠다는 게냐?
그리고 그 일터에는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밤잠도 못자며 땀 흘려 일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저마다 딸린 부양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들 가족 중에 지금 입원환자도 있을 거고 등록금을 내야 할 학생도 있을 것이다. 연탄도 들여야 하고 눈이 내리기 전에 김장도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살기위해 일하는 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게냐?
이처럼 생각이 돌이켜지자 그토록 골이 아프던 소음이 아무렇지 않게 들렸다.
이 때를 고비로 나는 종래까지의 사고와 가치의식이 아주 달라졌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새겨지게 되었다.
소유관념이나 손해에 대한 개념도 자연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
내 것이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손해란 있을 수 없다.
또 손해가 이 세상 어느 누군가에겐 이익이 될 수만 있다면
그 것은 잃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절에도 가끔 도둑이 들어온다. 절이라고 이 지상의 풍속권에서 예외는 아니다.
주기적으로 기웃거리는 단골 도둑이 있어 허술한 문단속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날마다 소용되는 물건을 잃었을 때 괘씸하고 서운한 생각이 고개를 들려고 했다.
그러자 "본래무일물" 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한동안 맡아가지고 있던 걸 돌려 보낸 거라고...
자칫하면 물건 잃고 마음까지 잃을 뻔하다가
"공수래공수거" 의 교훈이 내 마음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대중가요의 가사를 빌릴 것도 없이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없지 않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 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화나는 그 불꽃 속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와의 접촉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그 보다 생각을 돌이키는 일상적인 훈련이 앞서야 한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