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만 아빠
꽃잎 피다 진 계절을 따라
7년간의 결혼은 끝이 나고
집도 돈도 다 가져가도 좋으니
딸만은 자신이 키우게 해달라는
아빠의 소원대로
두 사람만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는데요
“저희 아빠 이름은 한 병 만인데요”
이름이 그래서 그런지
저녁밥을 먹고 나면
한 병만..
딱 한 병만을 노래 부른다는
아빠를 위해 요리를 했다는 딸이
“아빠..
좋아하는 된장찌개 끓여났어
빨리 와..“
“오케이”
어른인 아빠보다
더 행복해하는 고사리 같은
딸의 문자에
초승달처럼 일그러졌던 얼굴이
어느새 보름달이 되었습니다
“바나나우유는 우리 딸 거
이건 아빠 거“
“또 술이야!
근데 아빠 건 왜 두 개야?“
“ 한 병은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내일 먹으려고...
그건 괜찮지 딸?“
“그 정도는 용서해 줄게“
퇴근길
술 한잔하자는 동료들을 뿌리치고
들어온 아빠는 딸이 빨리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게 어디 갔지
분명히 여기 뒀는데“‘
딸이 잠든 틈을 타 냉장고로 간 아빠의 눈에 있어야 할 소주 한 병이
안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밤새도록
달님에게 물어봐도...
별님에게
가르쳐 달래봐도...
비밀이라는 말만 들려오던 밤을
홀로 세우며
딸이
심술부리는 것도...
투정 부리는 것도.....
기억할 거라며
오늘도
설거지까지 마치고
잠든 딸이 써놓은 일기장에
주인공이 늘 자신인 걸 흐뭇해하며
함께 잠이 들고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딸 꿈을 꾼다는 아빠가
잠들었다 일어난 아침
눈을 떠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데
조용히 잠들어 있는 소주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이게 어찌 된 거지
내가 귀신에 홀린 건가?“
냉장고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아빠를 보며
“아빠….
학교 다녀올게”
싱긋이 웃으며 나가는 딸은
거리에 뜬 해님을 보며
“쉿...
아빠에겐 비밀이에요“
그렇게
딸은 동그란 해님과 예쁜
비밀 하나가 생기고 있었답니다
“아빠가 오늘 돈 많이 벌었지롱“
“아빠 힘들지 않았어?”
“요 빨간 돼지를 포동포동 살찌워서
우리 딸 대학 가는 날 잡을 거야“
딸이
이다음에 세상을 향해
떼는 첫걸음이 되어줄 거라며
차곡차곡 가슴속에 담고 있는
그런 아빠에게
엄마에게서 온 문자를 보여주는 딸
“미국에 간 엄마가 나 데리러 온대
미국 와서 공부하래“
학원 하나
변변히 보내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안주 삼아 아빠는 밤새 소주 병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아빠 왜 안 자?“
“별들이 자꾸 놀자고 그러네
그런 넌 왜 안 자?“
“난 달님이 자장가를 안 불러줘서..”
“아빠가 대신 불러줄까?‘”
“아빠 나 없으면 밥 안 먹고 술만 먹을 거잖아 그래서 나 안 갈려고“
“ 학원도 못 보내주는 아빠 옆에
있는 것보다 미국 가서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돼 알았지?”
“ 아빠 이름처럼 한 병만 먹는다고
약속하면 나 갈게”
누구나
한 번은 이별하지만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던
아빠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이어져 있는 이 느낌으로
내일도 사랑할 거라며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비 갠 아침
새벽 일찍 데리러 온 엄마를 따라
가 버린 딸의 빈방에 앉아
아빠의 마음은
눈물로 자란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딸이 멀어져 간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띵똥.....
또 다른 시작을 꿈꾸며
딸은 아빠의 품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엔
공부보다 소중한 것들이
더 많다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