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새봄, 누군가 또 이사를 간다 누군가 버림받은 곳에서만 꽃은 핀다

부깨 2023. 7. 13. 13:19

 

 

 

꽃의 재발견 - 김륭

새봄, 누군가 또 이사를 간다

 

재개발지구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야

코딱지 후비며 고층아파트로 우뚝 서겠지만

 

개발될 수 없는 가난을 짊어진

양지전파상 金만복 씨도 떠나고

흠흠 낡은 가죽소파 하나 버려져 있다

 

좀 더 평수 넓은 집을 궁리하던 궁둥이들이

깨진 화분처럼 올려져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작은 밑거름도 될 수 없는 똥 덩어리들

꽃을 먹여 살리는 건 밥이 아니라 똥이어서

공중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로

 

머리띠 동여매고 뭉개진 발자국들이

궁둥이 두들겨 꽃을 뱉어낸 거지

언제부터일까 버리는 것보다

버림받는 것이 죄가 되는 세상

 

푹신푹신했던 소파가죽 찢어발기고

툭, 튀어나온 스프링

누군가 버림받은 곳에서만

꽃은 핀다

계간 『신생』 2007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