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겨울, 일월 십일 아침, 여덟시가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리고 마당 가득 눈이 내렸다
내가 아직 이불 속에 있는데
엄마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넌 아직도
잠만 자고 있니!
나는 눈을 부비며 마당으로 나왔다
난 이제 열살이었다
버릇없는 새들이 담장 위에서
내가 늦잠을 잔 걸 갖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외박 전문가인 지빠귀새는 내 눈길을 피하려고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눈은 이미 그쳤지만
신발과 지붕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나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어 집 뒤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붉은 열매들이 있었다
가시나무에 매달린 붉은 열매들
그때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가시나무에 앉은 텃새들이 비명을 질렸다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 난 갑자기
어떤 걸 알아 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내 삶을 지배하게 될 어떤 것이,
작은 붉은 열매와도 같은 어떤 것이
나를, 내 생각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겨울의 마른 열매들처럼
바람 하나에도 부스럭거려야 했다
언덕 위에서는 멀리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는 얼고 그 위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 붉은 잎들 좀 봐, 바람에 날려가는!
저수지 위에 흩날리는 붉은 잎들!
흰 눈과 함께 붉은 잎들이
어디론가 날려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해 겨울의
마지막 남은 나뭇잎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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