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절정이다 // 천양희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매미는 울음소리로 저를 알리고
지렁이도 심장이 있어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슬픔에 비길 만한 진실이 없다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했다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만 살고
무명초는 씨앗으로 이름값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가난을 생각하며
'살다'에다 밑줄 긋던그때를 생각한다
제 그림자 밟지 않으려고
햇빛 마주 보며 걸어갔던
시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걸 알았을 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그때를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절정이다
- 새벽에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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