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그러니까 부지런히 움직이고 몰입하면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돼요.

부깨 2018. 9. 12. 05:07

 

 

견딜 수 있는 것들이 견딜 수 없게 하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이 견디게 하네 / 김정한

 


내게 가치 있는 것은 나무에서 사과 떨어지듯 '툭'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땅에서 새싹 돋듯 '불쑥' 솟는 것이 아니었어요.


문 열어두고 가만히 앉아 기다려도 오지 않았어요.

자발적으로 방향을 제대로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고 보살피며

소유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야 했어요.


음악가 베토벤을 보더라도 한평생을 가난과 실연, 병에 시달리며 살았죠.

베토벤의 아버지는 테너 가수였지만 4살 때부터 음악공부를 강요하며

어린 베토벤을 밥벌이의 도구로 삼았어요.


어린 시절 베토벤은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지냈죠.

그러다가 17세에 어머니를 잃었고

28세에 청각을 잃는 비참한 운명을 맞다가


서른 초반에 죽을 결심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악착같이 생을 붙잡죠.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작곡에 몰두하죠.

그 결과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교향곡 제 3번 '영웅' ,

피아노 협주곡 제 4번 '운명'을 탄생시켜요.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교향곡 제 9번 '합창'을

빈에서 지휘했을 때 관중들은 일어나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었죠.


청력을 완전히 잃은 베토벤은 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단원 중 한 사람이 베토벤의 몸을 돌려 관중석을 향하게 하였을 때

비로소 성공을 거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렸죠.


베토벤은 암흑 같은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냈어요.

래서 가치 있는 작품이 탄생되었죠.  


괴테가 말했죠.

'눈물을 흘리면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없다.'


그래요.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는 수많은 고난과 장애물이 놓여있어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면서 장애물을 하나씩 걷어 내야 해요.


하늘을 바라보며 치솟는 대나무를 보더라도 높이 오르기 위해 애를 쓰잖아요.

스스로 가벼워지기 위해 속을 비우잖아요.


사과나무를 보더라도 처음에는 생육 활동을 열심히 해서

하얗게 꽃향기를 피우며 주렁주렁 사과를 가득 안죠.


그러나 겨울이 오면 사과와 잎을 다 내어주고

나목으로 혹독한 추위를 견디잖아요.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순응하며 견뎌야 해요.

따스함도 누리고 혹독한 더위도, 상쾌한 바람도, 잔인한 추위도 견뎌야 해요.


가끔 견딜 수 있는 것들이 견딜 수 없게 하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나를 견디라 하죠.

그것이 생의 섭리이고 합의인 것 같아요.  


물론 혹독한 고통은 쓰죠. 지나고 나면 달아요.

그러니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며 정성을 다해야죠.


간절히 원하고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한 번에 영광을 안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정말 열심히 했고 일하면서도 즐거웠다면 마음은 뿌듯하잖아요.


아마도 다음에 도전할 때는 더 신중하고 더 몰입하여

더 나은 결과를 안게 될 거예요.


원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정성을 다해야 가치 있는 것은

나를 향해 달려올 테니까요.


과거를 회상하면 어릴 적에 난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부모 곁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면서 사고 싶은 책을 맘대로 사지 못했어요.


주말이면 자주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았죠.

모퉁이에 기대앉아 읽다가 또 메모해 두고는

주말에 다시 가서 그 책을 끝까지 읽곤 했어요.


대학을 들어가서도 책이 읽고 싶어 교수 연구실 조교로 들어갔어요.

한 번은 두툼한 셰익스피어 전집이 갖고 싶어 서점에서

수십 번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다가 결국은 지도교수에게 책을 빌려

여름방학 내내 읽은 적도 있어요.


작가로 살고 있는 지금도 갖고 싶거나 읽고 싶은 책은 중고서점을 뒤적여서라도 찾아내어 구입하죠.


작가로 살고 있는 내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글을 써서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니까요. 그것이 생이 다하는 날까지 나의 사명이에요. 


나에게 온 책은 나를 만나는 순간 나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며

내 호흡기, 내 시야를 기쁘게 하기도, 아프게 하기도 하죠.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학창 시절 지도 교수님이 선물한 책, 연구실 교수님이 빌려준 책, 크리스마스 때 선물 받은 책, 지인이 준 책, 소녀가 선물한 책 등이 눈앞에 있어요.


책을 펼치면 여백마다 지도교수의 강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깨알같이 써놓은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와 뒤엉키죠.


책의 제목만 보더라도 어디서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생생하게 떠오르죠.


비록 서툴고 가난했지만 행복의 무게를 저울로는 달 수 없을 만큼 만족을 느꼈던 꿈 많은 청춘이죠.


그때 그 시절은 강물에 떠오른 붉은 꽃잎이 되어 나를 아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의 그 책들이 현재 나에게 밥을 먹여주고 갖고 싶은 것을 사게 해준다는 사실이에요.


현재의 나를 있게 해 준 고마운 그 책들은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에요.


서른 즈음 홍대 근처 프리마켓에서 단 돈 천 원을 주고 구입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지치고 흔들릴 때마다 꺼내서 읽죠.


자주 손이 간다는 것은 힐링이 되는 책이라는 거죠.

그때 그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곳곳에 눈물 번짐 자국이 많이 보여요.


돌아보면 아프고 방황했던 그 시절 나의 정체성을 찾게 해 준 것은 책이었어요.

스스로에게 감동을 줄만큼 끝까지 파고들었으니까요.


스스로를 감동시킬 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본 사람은 알죠.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나를 춤추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걸 알게 되면 대단하지 않더라도 몰입하게 되니까요.

몰입 속에 새로운 발견이 있으니까요.


새로운 발견은 곧 꿈의 창조이고 자신감이 높아지거든요.

자신감이 생기면 자존감은 또 무럭무럭 자라잖아요.


그러니까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되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거예요.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지거든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알죠. 그 느낌이 어떤 것인가를,

그것을 발견하면 저절로 눈물이 나요. 감동의 눈물이 나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고민하고 방황하고 흔들리고 일탈하는 것이 반드시 길을 잃는 것은 아니에요.


지나고 보면 그것이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행복한 모험이에요.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위한 도구, 즉 힘은 책이었어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책을 펼치면 평화가 스며요.

지금 역시 책을 가까이 하지만 책을 읽는 다기보다는 책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꿋꿋이 견뎌내기 위해서예요.


지금 내가 간절히 바라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예요. 책 속에는 작가의 값진 고통이 녹아있기에 간접 경험을 하게 되죠.


그래서 책은 그들의 삶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나의 삶이기도 하죠.

책을 쓴 사람, 그 책을 읽는 사람의 역사박물관이 되는 것이 책이에요.


그러니까 부지런히 움직이고 몰입하면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돼요.

그러니까 사명을 가지고 현재를 가장 바쁘게 살아야 해요.


그러면 오래지 않아 가치 있는 것을 많이 얻게 되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에요.


김정한 신작 산문집 [나는 아직 괜찮습니다 p168-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