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문제인가
인사청문회가 문제인가?
'제대로 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하여
고위 공직자로 지명된 후보들이 인사청문회에 가기도 전에 낙마하거나 자진 사퇴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여론재판식 '신상털기'라고 못마땅함를 표명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정파적 이익을 위한
야당의 '딴지 걸기' 때문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인사청문회라는 제도 자체에 회의를 표하기도 한다. 과연 인사청문회는 없애버리거나 대폭 축소해 버려도 좋을만큼 성가시기만 제도일까? 인선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청문회라는 제도 때문에 인사권자의 임명권 행사에 제동이 걸리게 되는 것일까? 인사가 문제인가 인사청문회가 문제인가?
'법' 과 '제도' 중요하지만 그걸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람' 중요해
어느 조직이나 기관를 막론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은 업무수행의 효율성 및 조직의 목표달성에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만약 선장을 선장다운 사람을 뽑아서 그 자리에 앉혔다면 사고의 규모나 희생자 수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국가에 있어서 인사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총리를 '총리다운 사람'으로 앉혀야 정부 조직에 기강이 서고 각 부처가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고, 법무부장관를 '법무부장관 다운 사람'으로 앉혀야 사법정의가 바로 서고
억울한 사람이 없게 될 것이며, 교육부 장관를 '교육부 장관 다운 사람'으로 앉혀야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서 아이들이 지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나게 될 것이다.
사람보다 '시스템'을 더 중시하는 입장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으니, '사람에 대한 신뢰보다는 법'
과 '제도' 만 잘 준수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일견 일리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법'과 '제도' 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자도 '사람'이고,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해석하고 집행하는 주체도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 못지않게 '사람'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 법철학자 존 치프만 그레이(John Chipmsn Gray; 1839~ 1915)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법조문은 법조문 자신이 해석하지 않는다. 법조문의 의미는 법정에서 판관에 의해 선포될 따름이다. 법조문이 법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법정에서 판관에 의해 선포된 해석에 의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판관의 위상은 대단히 위대한 것이다.([ The nature and
source of the law])
법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망라할 수는 없다. 법은 세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의 '대강' 만을 법조문으로 성문화 하고, 개별 사건에 대한 판결은
법조문에 대한 판관의 해석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판결은 '법자동판매기'에 의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라는 '사람'에 의해 선포되는 것이다. 결국 법을 만드는 자도 사람이고, 법을 해석하는 자도 사람이며, 법을 집행하는 자도 '사람' 이다. 법관이 '법관다운 사람'이 아닐 때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정치검사와 정치판사가 성하게 되고, 이들 때문에 다른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법조인의 얼굴에까지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인사청문회라는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청문회가 후보자의 '능력'이나 '전문성'을 도외시한채 지나치게 '도덕성 검증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직수행 능력과 관련된
'자격검증'이 아니라 '인격검증'에 치우치고 있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도덕성'이란 사실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흔히 공직 후보자 물망에 오르는 사람들의 결격사유로 지목되는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병역기피, 논문표절, 불법정치자금 수수, 탈세 등의 사항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범법'의 문제이다. 단순히 도덕성의 문제라면 '여론재판'이나 '흠집내기'라는 평도 가능하겠지만, 사실 위에 열거한 문제들은 단순한 도덕적 흠결이 아니라 엄연히 '불법' 또는 '범법'에 속하는 사안들이다. 과연 불법과 범법행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며 살아온 사람들을 고위공직에 앉혀도 되는 것일까? 일반시민들이 가진 '상식적인 도덕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을 고위 공직자로 임명한다면 수많은 하급공무원들은 과연 그를 존경하며 믿고 따를 것인가?
미국 인사 검증 시스템 , 우리보다 기간도 길고 검증항목 세밀해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지명한 약 2000여 명의 공직 후보자가 연방 상원에서 인준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 가운데 안준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후보자의 수는 겨우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상원의원들은
우라나라 국회의원들처럼 졸렬하게 '신상털기'도 하지 않고.정파적 이익에도 초연한 젠틀맨들이어서 그런 것일까?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우리처럼 치밀하지도 않고 느슨하고 엉성해서 그런 것일까? 사실 정반대이다. 마국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우리보다 기간도 훨씬 길거니와 검증항목도 더 많고 엄청 세밀하다.
대통령이 공직후보자를 지명하면, 백악관 인사국,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 윤리위원회에서 후보자를 다방면으로 검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전과 또한 진행 중인 소송에 관한 사항, 심지어 교통범칙금 등 경범죄에 관한 사항까지 철저하게 검증의 대상이 된다. 어떤 공직후보자의 경우에는 수십년 전에 체납했던, 별로 많지도 않은 세금때문에 상원인준도 통과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아마 우리나라의 공직 후보자들처럼 수많은 불법과 범법 전과를 훈장처럼 달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원 근처에 가기도 전에 일치감치 백악관 인사국에서 걸러졌을 것이다.
임명권자는 안사청문회의 벽이 높다고 한탄하기 전에 '제대로 된 사람'을 추천했는지 스스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으며, 여론재판식 신상털기라고 불평하기 전에 자신의 도덕감이 보통시민들의 도덕감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법이나 제도를 준수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사람'을 제자리에 앉히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공자는 '제대로 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있을 때 정치가 일어서고 그 사람이 없으면 정치가 주저앉게 된다." 세칭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구절이 아니겠는가?
~ 이승환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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